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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공무원 소신 어디서 나올까 - 오피니언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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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처가 세종시로 이사를 갔다.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그만두고 싶다는 후배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간혹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도 등장한다. 소신은 본래 없는 것이고 생물학적 뇌는 있으나 영(靈)과 혼(魂)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 약체 기관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하던 병아리 시절이다. 어리바리하면서 일을 배우는 상황이었고 때로는 좌충우돌하면서 젊은 피의 온도를 조절하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지방 근무였으니 야전군 소대장이었고 아침 9시 커피타임을 겸한 회의가 있었다. 대단한 정책을 논의하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어제 있었고, 상부에서 이런 지시가 있었다`가 주요한 회의 내용이고 간혹 누구는 어떻고 하는 식의 가십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회의였다.

말귀가 약간 통하게 되었을 때쯤 지금도 존경하는 나의 첫 직장 상사가 커피타임 때 물은 말이, "박 사무관, 공무원의 소신이 어디서 나오는 것 같아?"였다. "글쎄요, 자기 철학이나 신념 이런 것 아닐까요?" "역시 젊군…. 음…, 공무원의 소신은 `빽`에서 나오는 거야!"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배우던 믿음직한 직장 상사로부터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나는 상상도 못 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 아주 인포멀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속내를 다 말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임 종료 직전, 좌장이 마지막 마이크를 잡았고 한말씀하신 것이 "공무원은 줄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따라 해라! 줄을 잡자!" 이것은 도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일까. 이분은 한술 더 떠서 줄을 잡는 모션까지 했는데 혈기 방장한 20대 사무관으로서는 참 어이없는 상황을 목도한 것이었다.

야전에서 허가를 내주는 자리에 2년을 근무했다. 법과 원칙에 부합해야 하지만 내 볼펜 끝에서 허가권이 나가니 사업자한테는 갑이었는데 부탁을 받는 경우도 있었고 압력이 들어오기도 했다. 두 업체가 경합할 때 사업자들은 자기가 떨어지면 그냥은 안 넘어가겠다고 은근 각오를 비쳤다. 내 뒤에는 누구누구가 있다고! 항상 뒷골이 뻐근했다. 작두 위에서 춤추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부처를 총리실로 옮기게 되었다. 밑에서 위를 보던 입장에서 위에서 아래를 보는 위치로 바뀐 것이다. 큰 권한은 없었지만 산 위에서는 아래 있는 사람들이 잘 보였다.

`저 길로 가면 낭떠러지인데…. 아! 저분은 저래서 공직을 떠나는구나. 저 사람은 오뚝이처럼 잘 버티네` 하는 것들이 연륜이 흐르면서 저절로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공무원의 소신이 어디서 나오는지 약간 감이 오기도 했다. 믿음직한 친구가 검찰에 버티고 있어 준다든가, 단결력 있는 고교동문회나 향우회가 청와대에 있다든가 감사원에 있으면 최소한 억울한 피해는 안 당한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호소할 데는 최소한 있는 것이다. 박 국장, 공무원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 걸까.

[박장호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산학협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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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2, 2020 at 10:0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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