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절친'이 쓴 평전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사랑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깨어남(Awakenings)'과 출간된 지 30년(한국어판 기준) 가까이 지난 올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재진입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등을 써 국내에도 친숙한 올리버 색스(1933~2015).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원제 And How Are You, Dr. Sacks?: A Biographical Memoir of Oliver Sacks·알마)은 자신이 돌본 환자들 못지않게 요동치는 삶을 살았던 색스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저자 로런스 웨슐러는 1981년 6월 편지로만 교류하던 색스를 그가 거주하던 미국 뉴욕의 시티아일랜드에서 만나고 둘은 곧 의기투합한다. 여러 방면에서 일치하는 관심사와 같은 유대인이라는 데서 오는 동질감으로 둘은 색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절친한 친구로 지낸다. 기자와 작가로 막 자리를 잡아가던 저자는 색스와 만날 때부터 그의 전기 집필을 염두에 두고 그의 승인 아래 꼼꼼히 둘 사이의 대화를 기록하고 그의 고향 영국과 미국의 가족, 친지, 동료들을 만나 그가 살아온 과정에 관해 인터뷰했다. 색스는 저자와 만난지 4년 만에 '고통스러운 개인적 이유'를 내세워 전기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지만, 둘은 이후에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색스는 말년에 이르러서는 저자에게 "중단했던 프로젝트를 재개하라"고 재촉했다고 한다.
대부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색스의 책들에는 인간 정신의 특질을 날카롭게 집어내는 신경과학자, 환자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이 인간다움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는 인간적인 의사, 예지와 통찰이 넘치는 글을 구사하는 문장가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저자가 그를 만나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색스는 동성애와 마약에 탐닉하고 오토바이로 광란의 질주를 일삼던 이단아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부모와 떨어져 억압적인 기숙학교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과 정확히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불과 12살인 그를 실험실에 데리고 가 아기의 시체를 해부하라고 시켰던 의사 엄마와의 불편한 관계, 동성애가 결코 너그럽게 수용되지 않았던 시대에 겪었던 성 정체성의 고민 등이 그의 이 같은 '질풍노도' 시절을 설명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명문 옥스퍼드 학부와 의대를 졸업했지만, 색스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향을 떠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직후인 1960년대 초반 그는 마리화나와 LSD, 메스암페타민 등 마약에 빠져들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그는 내가 아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많은 '화학적 자가실험'을 했다"고 풍자한다. 이즈음 그는 또 육중한 덩치에 가죽 재킷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와 LA 사이를 전속력으로 질주하곤 했다.
그러다 1960년대 말 마약을 끊기로 결심한다. 문란한 성생활을 그만두기로 한 것도 이 무렵이다. 색스는 그때를 회고하며 저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온갖 약물 경험을 통해 어디론가 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거기에 도착한 거였어. 한때 들뜬 발광과 비생산적인 각성을 원했지만, 어느새 생산적인 각성을 원하게 된 거야. 그쯤 되니 나는 더 이상 약물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어."
그러나 방탕했던 시절의 경험이 환자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었다. 영화 '사랑의 기적'에 묘사된 것과 같이 색스는 뇌염후증후군으로 시신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져든 환자들에게 도파민 전구물질인 '엘도파'를 투여해 일시적으로나마 의식과 신체 기능을 회복시킨다. 그는 "엘도파는 많은 점에서 암페타민의 약리학적 모델에 근접한 약물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뇌 흥분제의 매력과 위험이라는 양면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책에는 이 밖에도 색스가 초기작 '편두통(Migraine)'의 원고를 소속병원 원장에게 도둑맞았던 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등장하는 여러 환자와의 교감, '글막힘'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나는 내 침대에서 다리를 주웠다(A Leg to Stand On)'를 탈고하는 과정 등 그의 저작에 얽힌 일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또 초진 4~5시간을 기본으로 하고 진료비 청구를 쑥스러워하면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환자들만을 생각한 '참의사'의 모습도 보게 된다.
양병찬 옮김. 656쪽. 2만9천원.
cwhyn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20/09/03 08:00 송고
September 03, 2020 at 06: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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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마약·오토바이 폭주…올리버 색스의 이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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