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잘’ 던졌다는 것에 기준은 다르다. 거액 몸값의 선수에게는 6이닝 2실점도 못 던진 것일 수 있지만 신인에게는 6이닝 3실점도 잘한 것일 수 있다. 또한 누군가는 피안타와 볼넷이 많아도 실점이 적으면 잘 던진 것이라고 하고, 실점이 적어도 팀이 지면 못 던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메이저리그 선발 데뷔전에서 3.2이닝 1실점을 했다. 김광현은 ‘잘’ 던진 것일까.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냥 칭찬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경기 후 수없이 칭찬한 ‘위기관리 능력’ 에 대한 말들을 보며 그 모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7월 25일 개막전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1이닝 2실점 세이브를 기록한 이후 무려 24일간 강제 휴식을 가진 김광현은 4회 선두타자였던 이안 햅에게 88마일짜리 패스트볼이 어중간하게 높게 들어가 좌측 담장 넘기는 솔로홈런을 맞았다. 1-1 동점이 됐지만 김광현은 이후 3루수 땅볼과 유격수 땅볼로 2아웃까지 만들고 투구수 57개가 되자 강판됐다. 이후 외신에 따르면 이날 김광현은 60개 투구수 제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회빼고 매 이닝 위기… 내용상 1실점+ 되도 할말 없었다
이날 김광현은 2회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어낸 것을 제외하곤 매 이닝 득점권에 주자를 보내고 위기를 맞았다. 1회에는 1사 후 볼넷-2루타로 2,3루 위기에 놓이자 고의사구를 통해 1루를 채우고 병살을 노렸다. 다행히 이후 삼진과 땅볼이 나오며 실점하진 않았지만 만루까지 갔다는 것만으로 상당히 위험했다.
3회에도 시작과 동시에 안타를 맞고 볼넷까지 주며 무사 1,2루 위기였다. 다행히 3루땅볼을 유도해 병살타로 막고 2사 3루에서 1루수 직선아웃을 잡아냈다. 사실 이 타구가 1루수 폴 골드슈미츠가 조금만 옆에 있었어도 1루수를 뚫고 장타가 될 여지도 있었지만 골드슈미츠의 수비 위치가 좋았다.
불안불안하던 김광현은 4회 결국 선두타자에게 밋밋한 패스트볼로 솔로홈런을 맞고 만다. 이후 57구까지 던지고 2아웃을 잡은 후 60개 투구수 제한으로 인해 경기를 마친다.
이는 FIP(수비무관평균자책점)가 증명한다. 세이버매트릭스에선 ERA(평균자책점)보다 더 투수의 진짜 능력과 경기내용을 나타낸다고 믿는 FIP를 보면 김광현은 이날 FIP가 8.59에 달했다. ERA는 2.45로 9이닝당 2~3점을 내주는 정도였다고 하지만 사실 9이닝당 8~9점을 내줬어야하는 내용이었다는걸 FIP가 말해준다.
실제로 김광현은 3피안타 3볼넷을 내줬다. 11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동안 6명을 출루시켰다는 것만으로 내용적으로 좋지 않다. 단순히 결과는 3.2이닝 1실점 평균자책점 2.45로 좋을지 몰라도 내용적으로는 더 실점을 했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기관리능력’의 모순
이날 경기 후 김광현에 대해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났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1회 만루 위기에서 연속 아웃을 잡으며 무실점으로 막은 것과 3회 무사 1,2루에서 실점하지 않은 것, 그리고 4회 피홈런 후 2아웃을 잡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이 것이 좋았다는걸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예전부터 과연 투수에게 ‘위기관리 능력’과 타자에게 ‘클러치 히터’라는 말이 과연 적합한지, 실존하는 것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많다. 지금은 대부분 ‘그런 선수가 있긴 하지만 극히 일부며 일반적으로 평균에 수렴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정말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투수는 위기 상황이 오지 않게 하는 선수다. 위기 상황을 탈출할 능력이 있는 선수라면 왜 애초에 위기 상황을 만들겠는가. 마치 ‘지금처럼 힘든 상황에서는 어려운 공을 던져야한다’는 해설자들의 관습같은 멘트와 비슷하다. 어려운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면 힘든 상황 자체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김광현은 데뷔전에서 1이닝 2실점을 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3점차로 이기던 경기를 망칠뻔도 했다. 정말 힘겹게 거둔 세이브였고 딱 1이닝만 봤을때는 전혀 좋지 못한 데뷔전이었다.
그런 데뷔전을 가졌던 선수가 다음 등판에서 3.2이닝 1실점을 했다는 것으로 기준점을 삼는다면 분명 김광현의 선발 데뷔전은 긍정적이고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
또한 김광현은 마무리로 등판한 데뷔전 이후 팀사정상 마무리가 필요하지 않아 경기를 나오지 못한 것과 팀에서 코로나19가 터지며 경기가 연기된 것까지 더해 무려 24일을 쉬고 등판했다. 24일동안 팀분위기가 뒤숭숭했고 코로나19 격리로 인해 운동하기도 쉽지 않았던 환경, 경기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그리고 김광현은 마무리 투수로 몸을 만들었다가 다시 선발투수로 몸을 바꾸고 있다. 이런 모든 사정들을 감안한다면 비록 내용이 좋지 못한 3.2이닝 1실점이라도 ‘잘’했다고 격려해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저 3.2이닝 1실점이라는 기록만 놓고 ‘최고의 투구’, ‘무결점 투구’,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소위 ‘국뽕’에 취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재호의 스탯볼 : 스탯볼은 기록(Statistic)의 준말인 스탯(Stat)과 볼(Ball)의 합성어로 '이재호의 스탯볼'은 경기를 통해 드러난 각종 기록 그 너머를 분석한 칼럼입니다.
August 19, 2020 at 03:2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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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이 '잘' 던졌나요? 그놈의 '위기관리능력'의 모순[이재호의 스탯볼] - 스포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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