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세계 최대인 미국에서 지난 6월 한 가사노동자 여성이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했다. 필리핀 출신인 이 여성의 이름은 페데리나 루가산(83).
일본 마이니치 신문 보도
아직도 성행하는 인신매매...희생자 2090만여명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페데리나 루가산은 65년간 고용주로부터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당한 인신매매의 피해자였다. 지난 2018년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구출된 뒤 올해 사망할 때까지 그가 누린 자유의 시간은 불과 2년이었다. 마이니치는 "제2의 인생을 누리려던 참에 코로나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루가산은 12세에 부모를 잃고 16세에 가정부(메이드)가 됐다. 처음 일할 때는 월급을 줬지만, 어느덧 그마저도 사라졌고 언어적·신체적 폭력이 계속됐다.
루가산은 처음엔 미국에 사는 고용주의 자매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된다고 듣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들은 것과 실제 업무는 너무 달랐다. 그는 고용주의 어머니와 자매의 자녀, 손자까지 고용주의 일가친척을 돌봐야 했다. 이들이 각자 떨어져 살고 있다 보니 루가산은 매일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버스로 이동해 하루에 세 가족 분량의 요리·빨래·청소를 했다. 격무에 시달렸지만, 월급도, 쉬는 날도 없었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인신매매를 현대판 노예제로 규정하며, 힘이나 거짓말로 강제 노동을 시키거나 성 착취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마이니치는 "업무 내용에 거짓이 있거나 빚 등을 이유로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도 버젓한 인신매매"라고 강조했다.
마이니치는 "루가산은 군말 없이 일했지만, 고용주는 태도가 나쁘다고 욕설을 퍼부으며 구타했다"고 보도했다. 고용주는 그의 여권도 빼앗았다.
그렇게 65년을 살던 루가산의 삶이 바뀐 건 지난 2018년 몸이 아팠던 고용주가 입원했을 때였다. 고용주의 자녀는 병문안을 오지 않았고 고용주의 곁에 딱 붙어 간호하던 루가산은 자기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구토를 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간호사가 사회복지사를 불렀다. 사회복지사는 그가 학대받고 있다고 생각해 "제대로 쉬고 있느냐", "월급은 꼬박꼬박 받고 있느냐"고 물었다. 루가산은 그렇다고 답했지만, 그 대답이 사실이 아니라고 여긴 사회복지사가 FBI에 신고했다.
구출해주겠다는 FBI에 루가산은 오히려 "내가 떠나면 당뇨를 앓는 고용주의 약을 찾아갈 사람이 없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FBI 관계자는 매주 한 번씩 2개월간 끈질기게 루가산을 찾아가 설득했다. 이를 눈치챈 고용주가 루가산을 협박하자, 결국엔 루가산도 마음을 돌려 고용주 곁을 떠났다.
이어 열린 재판에서 루가산은 '현대판 노예제'의 희생자였다고 인정받았다. 악덕 고용주의 학대에 시달렸는데도 루가산은 상대방을 끝까지 생각했다. 루가산은 판사에게 "그녀(고용주)를 감옥에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마이니치는 "이 일에서 루가산의 인품이 잘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고용주는 가택 감금과 약 10만 달러(1억1800만원)의 손해배상 지불 명령을 받았다. 고용주는 가택 감금 중에 사망했다. 루가산은 고용주가 사망한 뒤 그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
루가산은 구출된 후 적극적으로 인신매매 피해자의 인권과 관련된 행사에 참여하고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생전 루가산은 마이니치에 "나와 같은 사람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세계적으로 인신매매는 성행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인신매매 희생자는 전 세계적으로 2090만여명에 이른다. 인신매매는 마약 밀수, 불법 무기 거래에 이은 세계 3대 범죄로 규정된다.
August 17, 2020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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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생활 65년' 벗어났는데...야속한 코로나, 83세 앗아갔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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