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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데스크] 잠시 불편해도 멀어질 수 없는 사이 - 오피니언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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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심학산으로 등산을 갔다. 산기슭에 있는 약천사라는 사찰에 들렀는데 난데없이 일본어가 들려왔다. 40대로 보이는 중년의 일본 여성 3명이 그곳까지 온 것이다. 그 일본 여성들은 법당 한구석에 놓인 위패 앞에서 합장을 하고 선물과 편지를 내려 놓았다. 위패의 주인공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탤런트 박용하였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그를 잊지 못해 파주 산속까지 찾아온 것이다. 2000년대 일본을 강타했던 `한류붐`은 1998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문화 개방 조치에 의해 그 기반이 닦였다. `왜색`이라는 미명하에 광복 이후 무려 50년 이상 차단됐던 가요, 영화, 만화 등 일본 대중문화의 국내 유입을 허용한 것이다.

빗장을 풀자 `문화 경술국치`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잇따랐다. 하지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문화 콘텐츠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시장을 열고 경쟁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과는 한일 양국의 `윈윈`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승리였다. 일본 열도를 강타했던 한류 붐은 2000년대 이후 우리 문화 콘텐츠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초석을 닦았다.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실익을 챙겼음은 물론이다.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한일 양국은 극한 대치의 벼랑 끝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당장 큰 변곡점은 오는 8월 4일이다. 그날 0시부터 우리 법원은 일본 전범기업의 자산 압류에 대해 강제 매각 후 현금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겠다"며 강경한 보복 조치를 예고했다. 우리 정부는 `소부장 시즌2`로 정면 대응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 1년간 우리 기업들이 일본의 수출 규제에 잘 버텨왔다며 앞으로도 타협 없이 우리의 갈 길을 묵묵히 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재계의 속내는 다르다. 일본산 의존도가 높은 실리콘웨이퍼나 OLED 재료 등에 대해 일본이 2차 수출 보복 조치를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강제징용 판결이 사법 이슈인 건 분명하지만 `난제를 풀겠다`는 신념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면 얼마든지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한일 기업과 국민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1+1+α(알파) 특별법이 발의돼 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지난해 발의했는데 피해자들의 반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21대 국회가 개원한 후 윤상현 전 국회 외통위원장이 다시 발의한 법안이다. 일본 정치권도 환영했고, 우리 국민들도 찬성 여론이 더 많았던 제안인 만큼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 피해자들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며칠 전 재외동포들과 영상 간담회를 연 자리에서 남관표 주일대사에게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도움 받은 점에 대해 고마움을 잘 전해달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체류 국민들을 귀국시키는 과정에서 일본과 협력이 이뤄진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그렇게 작은 감사와 신뢰가 쌓이다 보면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양국 관계도 분명히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도록 외교적으로 지원해주고, 대신 우리나라가 주요 7개국(G7) 확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일본에 요청해 보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한일 통화스왑도 다시 체결할 수 있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관계 복원에 나서면 오히려 일본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작년 말 한일정상회담 때 양국 관계를 "잠시 불편함이 있어도 결코 멀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규정했다. 외교에서는 명분보다는 국익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모든 경제지표가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다.

[채수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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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30, 2020 at 10:0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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