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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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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희의 학교 공감일기
⑨아이는 자기 삶의 전문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민우야, 할 얘기가 있는 모양인데, 좀 들어와볼래?”
중학교 2학년 민우(가명)가 초조한 듯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곧 교무실로 들어설 듯하더니 또다시 눈길을 피해 되돌아가기를 여러차례 반복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불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어선 민우는 “선생님, 저 지금 불안해요”라고 말했다. “불안한 이유가 뭘까?” 물었더니 “이제 시험이 한달도 안 남았어요. 수학을 잘하고 싶은데, 학원 때문에 늘 바쁘고 남는 시간은 얼마 없고,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요” 하는 것이다. 민우는 우리 반의 대표 장난꾸러기로 평소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시험은 3주 이상 남아 있었다. “시험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는구나?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라고 물었다. “저는 매일 2시간씩 영어, 수학 학원을 다녀요. 그런데 숙제가 엄청 많아서 나머지 시간과 주말에는 숙제를 해야 해요. 영어는 따라갈 만한데, 수학이 문제예요. 저에게는 지금 배우고 있는 2학년 과정도 너무 어려운데 3학년 과정을 미리 배우고 있어요. 지난번 1차 지필평가에서는 35점을 맞아서 실망이 컸어요. 2차 지필평가는 잘해보고 싶어요. 제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혼자 공부해봐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안 나요.” “그래, 너 아주 의미 있는 고민을 하고 있구나. 선생님이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니?” 하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엄마를 설득해주시면 좋겠어요. 시험 전까지라도 학원을 쉬면서 저 스스로 공부해보고 싶어서 말씀드려봤는데 엄마는 다니던 학원 수업이 문제라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아이 엄마의 소개로 다른 학원을 알아봐 옮겨주셨죠. 그런데 이번 학원은 그 전보다 더 어려운 문제를 다뤄서 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하는 것이다. “공부 계획은 어떻게 세웠니? 엄마가 불안하지 않게 구체적인 계획을 알려드리면 더 잘 믿어주실 거야.” “초등학교 6학년 때랑 작년에 배웠던 개념들이 아직 혼동돼요. 그래서 6학년과 중학교 1학년 문제지를 사서 풀어가며 어려운 개념들을 찾아내어 이해한 뒤 시험 범위를 중심으로 중학교 2학년 과정을 복습하려고 해요.” 아이는 그 누구보다 스스로의 학습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만나 ‘아이가 얼마나 정확하게 학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는지’ 전했다. ‘공부에 대한 자기 근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 어머니는 시험 전 한달간 수학 학원을 쉬게 하는 데 동의했다. 수학 시험이 끝난 뒤 뿌듯한 듯 밝은 얼굴의 민우가 보여준 시험지에는 크게 75점이라고 쓰여 있었다. 단번에 40점이 오른 것이었다. 아이에게 ‘애썼다’고 격려하며 어머니도 궁금하실 테니 보여드리라고 했다. 이튿날 어두운 얼굴로 나타난 민우는 “엄마가 ‘겨우 75점 맞을 너를 믿고 학원까지 끊다니 한심하다’며 제 시험지를 찢어버리셨어요. 저는 역시 공부에 소질이 없나 봐요” 하는 게 아닌가. “저런… 칭찬받고 싶었을 텐데, 실망이 컸겠네. 그런데 넌 2년간 누적된 부족한 개념을 스스로 진단하고 해결할 방법까지 찾아내어 실천했잖아. 성적이 단번에 40점이나 향상됐고. 그런 네가 공부에 소질이 없다니? 내가 보기에는 소질도 있고 가능성도 충분해.” “정말 그럴까요?” “그럼! 네 공부 전략은 정확했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90점, 100점 맞는 것보다 몇배 더 귀한 능력을 기른 거야.” 아이의 굳은 얼굴은 다시금 부드러워졌다. 종종 학부모들에게 “우리 아이는 생각이 없어요” “애가 뭘 아나요?” 같은 말을 듣곤 한다. 25년째 교사로 살아오며 잘 살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를 만나본 일이 없다. 저마다 주어진 환경에서 더 발전하고 싶어 애를 쓰며 커가고 있다. 아이야말로 스스로의 삶에 최적화된 전문가다. 아이가 주체적으로 삶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원한다면 외부 전문가에게 묻기보다 아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도 직접 듣기를 바란다. 판단을 멈추고 구체적으로 물으며 길게 듣자. 그리고 곁에서 잠잠히 바라보며 오래 기다리자. 아이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자란다. 지금 이 순간이 결코 아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다.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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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3, 2020 at 05:3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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