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행복입니다] 간호사 문정수·김은실씨 부부
대구에서 코로나 환자가 하루 수백 명씩 나오고 있던 지난 2월 27일 아침, 경남 창원에 있는 집에서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딸과 놀고 있는데 아내 김은실(31)이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다. 아내는 대학 졸업 후 7년간 경남 창원의 한 종합병원 인공신장실에서 일하다가 출산 준비와 함께 2년 이상 일을 그만둔 상태였다. 이때만 해도 아내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 "가고 싶으면 가야지"라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아내는 진심이었다. 다음 날(2월 28일) 새벽 아내는 짐을 싸 들고 대구보훈병원으로 갔다. 아내가 경남간호사회의 파견 간호사 모집 문자를 받고 집을 나서기까지는 채 48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내는 아이에게 "엄마 아픈 사람들 도와주고 와도 돼?" "엄마 없이 아빠랑 잘 있을 수 있지?"라며 물었고 아이는 "응, 알겠어"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그 의미를 얼마나 알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의 생애 첫 '아빠 혼자 육아'가 시작됐다.
◇갑작스러운 '아빠 육아' 한 달
나 역시 간호사로, 평소 경남 창원의 한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을 보살펴왔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아내 덕에 살림도, 육아도 미숙했다. 그동안 아내는 두 돌도 안 된 아이와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아내가 대구에 가 있는 동안은 일을 쉬고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나 마트에 가면 다른 아이들은 대개 엄마랑 둘이 오거나 부모와 함께 와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 모임에 나가도 남편 혼자 참석하니 어색하기만 했다. 아이 엄마였으면 함께 잘 어울렸을 텐데.
아이가 별안간 울고 떼쓰기 시작하면 난처했다. 아빠라 그런 건지,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적어서 그런 건지 아이가 뭘 원하는지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간 몇 번 해본 적 없는 요리도 자주 하게 됐다. 처음엔 콩나물, 어묵볶음 같은 반찬을 사다 먹이고, 어머니가 끓여다 주시는 곰국에 의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이 다 돼갈 때쯤엔 아이가 먹을 수 있게 간을 약하게 한 쇠고기 미역국 정도는 혼자 끓이고 밥도 직접 해 먹일 수 있게 됐다.
◇아이 두 돌, 영상통화 축하 파티
아내가 대구에서 코로나 전사로 활약하는 동안, 통화와 문자로 연락했다. 아내는 "레벨D 전신 방호복과 마스크, 고글은 너무 불편하고 힘들지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최대한 오래 있고 싶다"고 했다. 방호복 때문에 숨쉬기 어렵고 구토 증상이 있어 밖으로 뛰쳐나온 적이 있었지만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이 그립다고도 했다. 아내에게 당장이라도 돌아오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 스스로 아이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약속을 지키고 싶다'기에 응원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대구에 간 지 2주가 되는 3월 12일은 딸아이의 두 돌이었다. 처제와 아내 친구 2명이 함께 생일을 축하해준다며 집으로 찾아왔다. 생일상을 차리고 아내와 영상통화를 시작했다. 아내는 아이에게 "우리 딸 보고 싶어. 그치만 엄마는 아픈 사람들 더 도와주고 갈 거야. 괜찮지?"라고 물었다. 아이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이날 대구에서 함께 일하는 간호사들이 아내 방호복 등 뒤에 아이의 이름(문하담)을 써주며 축하해줬다는 것도 들었다.
아내는 코로나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파견 근무 기간 한 달을 채우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온 뒤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항상 대구를, 대구의 의료진을 걱정하며 언제든 다시 달려가고 싶다고 했다. 나 혼자가 아닌 모두를 위해 힘쓰는 아내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코로나 일선에서 그리고 각자 자리에서 힘쓰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June 25, 2020 at 03:00AM
https://ift.tt/31hAopB
"엄마가 아픈 사람들 도와주고 올게"… 대구로 간 아내, 딸 두 돌 생일땐 방호복에 아이 이름 새기고 환자 돌봐 - 조선일보
https://ift.tt/2YsYwT9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엄마가 아픈 사람들 도와주고 올게"… 대구로 간 아내, 딸 두 돌 생일땐 방호복에 아이 이름 새기고 환자 돌봐 - 조선일보"
Post a Comment